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나타나엘에 대해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아니면 위선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이방인의 피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우리가 어떤 수도자에 대해 참으로 수도자답다고 할 때,
거기에는 껍데기만 수도자가 아니고
그 됨됨이가 속속들이 진짜 수도자라는 뜻이 있고
거기에는 또 오로지 하느님을 위해 성별된,
오로지 하느님께 바쳐진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에는 마찬가지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이방인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이방인처럼 우상을 섬기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율법 학자들처럼 위선자가 아니라는 뜻에서 참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
하느님보다 사람 눈에 더 들려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들의 비위나 맞추려드는 사람이 아니고
겉으로는 거룩하지만 속에는 탐욕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거짓이 없고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은
말과 행위,
안과 밖,
행위와 존재가 다르지 않고 일치한다는 인간적 자기완성의 차원이 아니라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 진심으로 대한다는 인간관계적 성숙 차원 뿐 아니라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이고 하느님 앞에서 거짓이 없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어제는 한 수도자를 면담하였습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고 전에도 몇 번 면담을 했던 분입니다.
어렸을 때 가정 폭력을 경험한 분이고
그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아서 공동체 생활에서
다시 그 상처가 건드려져 그 상처가 계속되는 분입니다.
그래서 치유를 받으려고 심리 상담을 받고 했는데
심리 상담도 필요하지만 그 상처를 가지고 주님께 가라고 조언했고
그분도 그러려고 했으며 그래서 정말로 자주 성당을 찾곤 했습니다.
그래서 점차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제 와서는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더 악화된 것이고 자살 충동까지 일 정도인데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제 비로소 제대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도가 이렇게 심해지기 전까지는 상담을 하고 성당에 갔어도 그저
계속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지 절실하지 않았고 진실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진심으로 자신을 상담자와 하느님께 내놓지 않았었는데
정말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해지자 이제 내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성당에 자주 간 것은 기도 행위를 한 것이지
기도한 것이 아니었고 이제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절실’이 ‘진실’을 견인한 것이고
이제 비로소 하느님 앞에 진실하게 나아가 자신을 온전히 의탁한 것이며
자신의 상처 치유를 하느님 은총과 사랑에 이제 온전히 내맡긴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 앞에 자기 상처를 내보이지 않고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것은
치유는 받지 않고 나는 상처받았다며 계속 징징대며 우는 것과 같습니다.
말하자면 약 바르지 않고 자기 상처를 자기 입으로 ‘호’해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나타나엘은 자신을 환히 보시는 주님 앞에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았는데 우리도 주님 앞에 나갈 때
몸뚱이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