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파견되어서 해야 할 일이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오늘 독서의 말씀은 좋은 가르침이고 지금의 저에게는
걱정을 덜어주고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복음 선포와 세례 주는 것을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복음 선포보다 세례에 집착하기 쉬운데 바오로 사도는 오늘
세례의 욕심을 부리지 말고 그저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내 복음 선포의 마침표로 세례를 받게 하고픈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복음 선포로 누군가 세례를 받았다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고,
내가 이룬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싶은데 이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지역 사회 복음화를 목표로 <여기 선교 협동조합>을 하고,
협동조합 사업의 하나로 식당도 하는데 세례 주는 것이 식당의 가시적인 성과의
하나라면 그런 면에서는 아무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헛발짓일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차례 매스컴을 타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와 같은 목적으로 신부가 하는 식당이 매스컴을 타서 후원도 받고,
그 좋은 일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하라는 제안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이 매스컴을 탈만큼 그만큼 훌륭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설사 그만큼 훌륭한 일이고 그래서 매스컴을 탈 수 있을지라도 저는
그러고 싶지 않고 과거 북한 일을 할 때도 그런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좋은 일을 널리 알리고 그럼으로써 좋은 영향력을 세상에 주라는,
주님께서도 등불을 됫박에 덮어두지 말고 등경 위에 올려놓아
세상을 비추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렇게 하라는 설득을 받지만
저는 그 좋은 명분 뒤에 숨어있는 유혹을 경계합니다.
저는 매스컴을 탈 때 그것을 제 영광 삼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저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때
저는 성공의 유혹에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기에 하는 하느님의 사업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때 은근슬쩍 그 사업을 나의 것으로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 평양에 평화 봉사소를 위한 우리 계약 조건을 북한이 수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너무 기뻐 경당으로 달려가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때 문득 깨달음이 왔습니다.
내가 왜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가?
내 뜻을 그리고 내 사업을 주님께서 이루어주셨다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당신 사업을 내가 도구가 되어 이루어드린 거라면
주님께서 오히려 내게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그 사업을 내 것이라고 순간 착각하고 감사를 드린 것 아닌가?
이처럼 어떤 일이 가시적인 성과와 성공을 거둘 때
그것이 하느님을 위한 것도 이웃을 위한 것도 아닌,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이 되기 쉬운데 세례 주는 것도 그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 우리에게는 사랑이지만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성공이 아니라 실패이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따름은 그들이 볼 때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의 목표라면
세상이 볼 때 어리석을지라도 십자가라는 사랑을 목표로 삼고
그것이 우리의 복음이라고 선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