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오늘 독서와 복음은 영들에 대한 얘기이고,
하느님의 영,
세상의 영,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등장합니다.
모든 것에 영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나에게도 영이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렇다면 나의 영은 어떤 영일까? 오늘은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영접하는 영일까?
더러운 영 곧 세상의 영에 사로잡힌 영일까?
저는 주문처럼 이렇게 얘기합니다.
‘땅에서 하늘을 살자!’
또 자주 이렇게 강의합니다.
흙탕물 속에 피지만 잠기지 않고 아름다움과 향기를 풍기는 연꽃처럼,
세상 한가운데 살지만, 결코, 세속화되지 말고
세상에 복음의 향기를 풍기는 곧 세상을 복음화하는 사람이 되자!’
이런 지향으로 사니 저는 분명 하느님의 영을 영접하려는 자이고,
적어도 세상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더러운 영과 다릅니다.
저는 분명 악령처럼 주님과 상관없이 살려고 하지 않고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안에서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주님이 나를 괴롭히거나 멸망시키러 오신 분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러 오신 분이라고 믿습니다.
더군다나 프란치스코의 가르침대로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으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으려고는 하지만
세상에 살다 보니 자주 세상과 하느님 나라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합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가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자는,
앞서 얘기한 대로 땅에서 하늘을 살자는 것인데
하느님 나라를 내가 세상에서 이루려는 영적 성취욕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좋은 목적인데 더러운 영은 이 좋은 명분으로 저를 유혹합니다.
좋은 목적과 명분 안에 악령의 유혹이 숨어있다는 얘기입니다.
더러운 영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네가 이뤄봐!
거기서 만족을 누려봐!
그것은 세상 그 어떤 성취보다 고귀해!
그러니 하느님과 이웃 사랑 때문이 아니라 이런 성취감을
조금이라도 누리려고 한다면 저는 더러운 영과 영합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세상과 하늘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생입니다.
이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한다면
프란치스코가 얘기한 대로 기도와 헌신의 영이 꺼지지 않도록
한편으로는 교만과 방심을 경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깨어 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