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제 제가 본 무지개를 수녀님들도 보셨는지 어제 물었습니다.
아무도 못 보셨답니다.
무지개가 떴건만 보는 사람만 보는 것이지요.
안 봤을까요, 못 봤을까요?
설마 안 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못 보겠지요.
못 본다면 몰라서 못 볼까요?
무지개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다른 것, 예를 들어 하늘은 어떻습니까?
알지만 바빠서 못 보겠지요.
그러면 물리적으로 바빠서일까요?
물리적으로 바빠서 그렇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봄 되어 꽃을 보는 것도 못 볼만큼 바쁘기야 하겠습니까?
어디 멀리 소풍 가서 보는 꽃구경도 아닐진대.
그러니 사실은 무지개, 하늘, 꽃을 볼 마음이 아닙니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아들을 갑자기 잃은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과 방금 헤어진 여인이,
그 슬픔이 가시기 전에,
아니, 그 사랑하는 사람을 완전히 떠나보내지 않고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것이며
어떻게 다른 무엇을 대면할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경우도 있지요.
내 죄가 크고 큽니다.
죄는 빛과 어울리지 않고 아름다움과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죄 지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어둠이고,
어울리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퇴폐적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대명천지의 빛과 빛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언감생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를 감출 어둠을 몰아내십니다.
현장을 급습한 서치라이트가 어둠 속 불륜을 드러내고
드러난 사람들로 하여금 옷도 못 걸치고 도망치게 하듯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온상인 어둠을 없애심으로 죄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빛의 단죄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제 제가 본 무지개를 수녀님들도 보셨는지 어제 물었습니다.
아무도 못 보셨답니다.
무지개가 떴건만 보는 사람만 보는 것이지요.
안 봤을까요, 못 봤을까요?
설마 안 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못 보겠지요.
못 본다면 몰라서 못 볼까요?
무지개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다른 것, 예를 들어 하늘은 어떻습니까?
알지만 바빠서 못 보겠지요.
그러면 물리적으로 바빠서일까요?
물리적으로 바빠서 그렇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봄 되어 꽃을 보는 것도 못 볼만큼 바쁘기야 하겠습니까?
어디 멀리 소풍 가서 보는 꽃구경도 아닐진대.
그러니 사실은 무지개, 하늘, 꽃을 볼 마음이 아닙니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아들을 갑자기 잃은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과 방금 헤어진 여인이,
그 슬픔이 가시기 전에,
아니, 그 사랑하는 사람을 완전히 떠나보내지 않고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것이며
어떻게 다른 무엇을 대면할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경우도 있지요.
내 죄가 크고 큽니다.
죄는 빛과 어울리지 않고 아름다움과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죄 지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어둠이고,
어울리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퇴폐적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대명천지의 빛과 빛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언감생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를 감출 어둠을 몰아내십니다.
현장을 급습한 서치라이트가 어둠 속 불륜을 드러내고
드러난 사람들로 하여금 옷도 못 걸치고 도망치게 하듯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온상인 어둠을 없애심으로 죄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빛의 단죄인 것입니다.
일상 중 무심코 의식없이 지은
죄들이 산을 이루었고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닦아오심은
가장 깊게 고여있는 어둠을 조금씩
씻어주셨다
하느님께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