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에게는 세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
주님을 따르다가 실패하는 자
주님을 끝까지 잘 따르는 자입니다.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는 왜 따라야 하는지를 모르기에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따르다가 실패하는 자는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를 모르고 출발했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인데 그렇다면
끝까지 잘 따르는 자는 왜 그리고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다 알고 따른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주님을 따라 길을 가는 것으로 얘기가 시작되는데
그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미워해야 한다고.
둘째는 자신마저 미워하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셋째는 자기 소유를 다 버려야 한다고.
이것은 복음의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것과 맥을 같이합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따르는 것.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마저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작은 형제들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지요.
“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은 순종과 정결 안에 소유 없이 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한 마디로 우리의 삶은 ‘Sequela Christi’, 그리스도를 따라서 하느님께 가는 삶인데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 바로 버리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느님께로 가고,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바로 떠나가는 것이기 때문이고, 떠나가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잖습니까? 버리지 않고 그러니까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날 수 없고,
떠나지 않고서 갈 수 없잖습니까?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따르겠다고 하면 나서지도 못하겠지만,
설사 따라나섰다고 해도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날 것입니다.
전부터 산티아고 걷기가 유행인데 그것을 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짐을 많이 줄인다고 줄여서 갔는데도 걷다 보면 너무 무거워서
하나씩 하나씩 거의 다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을 갖고 걷게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주님을 따르는 삶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고, 헤아려 보라’고 하십니다.
‘앉아서’라는 말씀은 무턱대고 떠나지 말라는 말씀이고,
꽃길이 아니라 십자가 길을 갈 각오가 설 때 떠나라는 말씀이지요.
여기서 품게 되는 의문이 당연히 있습니다.
십자가 길을 갈 각오가 서지 않으면 떠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것은 따라도 되고 안 따라도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지요. 수도자가 되는 것은 돼도 되고 안 돼도 되며,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는 것은 돼도 되고 안 돼도 되지만
주님을 따르는 것은 따라도 되고 안 따라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졌으니 따를 수도, 안 따를 수도 있지만,
안 따르면 자기 손해이고 그것은 그저 돈 몇 푼 손해가 아니라
‘행복 손해’이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없는 엄청난 불행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라고 한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줬습니다.
그도 주님을 따를 생각이 없었지만, 주님 친히 회개를 시작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출세 곧 세상을 향해 나아가던 그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신 것은 주님이었습니다.
아시시로 돌아가면 당신 뜻을 알려주시겠다는 말에 따라 아시시로 돌아간 그에게
주님께서는 먼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은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줬지만, 나병환자를 사랑하는 것,
곧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두려움 때문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을 그렇게 보낸 그에게 주님께서는 용기를 주셨고 껴안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그는 고통을 사랑하고 십자가의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따를 각오가 되었다면 이제 우리도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