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주 금요일-2020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을과 고을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셨음을 얘기하는데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
여인들도 있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이 얘기는 주님께서 당시 소외와 차별을 받는
사람인 여인도 다른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환영하시고,
복음 선포단의 일원 또는 제자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셨음을 얘기합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들과는 다른 루카 복음의 특징임은 이 정도로 갈음하고,
오늘은 주님과 여인들의 관계를 좀 더 집중하여 보고자 합니다.
주님과 여인들의 관계는 무엇보다도 구원의 관계입니다.
물론 여인들은 주님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관계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사랑의 관계만이 아니라 구원의 관계라는 얘기입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는 여인은 많고도 많으며,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여인은 많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이런 여인과 구원받은 여인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제 생각에 구원받은 여인은 불행에서 건져진 여인이고 그래서
사랑받아 행복한 여인일 뿐 아니라 구원받아 행복한 여인이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여인들의 불행과 비 구원은 그저 인간적인
불행과 비 구원, 그러니까 가난이나 병고나 실연의 고통 정도가 아닌
악령에 의해 인간이 영적으로 파괴된, 그런 불행과 비 구원이었지요.
사실 영의 파괴는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전인적인 파괴이지요.
완전히 영에 제압당하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꼭 구원자가 있어야 하는데, 어떤 명의도 심리학자도 정신과 의사도
이들을 위한 구원자는 될 수 없었습니다.
옛날 제가 양성을 담당할 때 한 형제가 이런 상태였는데 반찬 하나도
자기가 먹고 싶은 대로 먹지 못하고 영이 시키는대로 먹어야 했고,
식당 자리도 마음대로 앉지 못하고 시키는대로 여기저기 옮겨다녀야 했으며,
영의 어두운 기운이 그 형제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짓누를 정도였는데
저의 어떤 말도 의사들의 어떤 치유도 먹혀들지 않아
참으로 무력감을 느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인들도 분명 이러했을 것이고 그래서 주님께 구원받았을 때
그 행복함과 주님께 대한 고마움은 그저 여인으로서 사랑을 드리는
그 이상의 것을 하게 하였고 가족들도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기에
주님을 따라나섰을 뿐 아니라 가진 재산도 바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주님의 구원에 대한 여인들의 보답은 헌신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과 여인들의 관계는 구원과 헌신의 관계이고,
그래서 자기 욕심 때문에 주님을 따르던 다른 제자들이 도망쳤을 때도
이 여인들은 끝까지 주님을 따라 십자가 밑에서 주님의 죽음을 지켰습니다.
이런 여인들을 보면서 악령에 사로잡힌 적이 없으니 나는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이들의 헌신을 보면서 나는 마냥 행복하다고 해도
되는지 성찰케 되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