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병든 이, 죄인이 당신을 더 필요로 하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고 죄로부터 그들을 회개시키려 오셨다고 하시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특별히 병자 몇 사람,
죄인 몇 사람을 위해 오셨다고 이해하면 아니 됩니다.
죄인 아닌 사람 어디 있고, 병자 아닌 사람 어디 있습니까?
의사가 필요치 않은 사람 어디 있고,
구원자가 필요 없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다 병자이고 죄인인데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와 율사들처럼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죄인과
오늘 복음의 레위처럼 죄인임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신질환자를 치유하기 힘든 이유도 자기 병을 인정치 않기 때문이랍니다.
사실 술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 알콜 중독자이고 저도 알콜 중독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인정을 하면서도 교묘히 비틉니다.
중독자이지만 중한 중독자는 아니라고 말입니다.
술 때문에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으니,
술 때문에 일상생활이 지장을 받은 적이 없으니 문제없다고 합니다.
인정하지만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병에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분명 병이 있는데도 이 정도는 괜찮아, 또는 이러다 괜찮아지겠지 하며
병의 중함을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치유를 시작조차 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병인 죄는 그 정도가 더 심합니다.
죄의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자신의 죄는 보지도 않고 인정치도 않습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는 것이 사실은 제일 큰 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큰 죄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죄가 아니고
회개를 원천적으로 못하게 하는 죄에 대한 불감증,
자신의 죄는 보지도 않고 인정치도 않는 죄 불감증이 제일 큰 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눈에서 보면
회개하지 않는 죄가 어쩌면 살인죄보다 더 크고,
하느님의 치유와 용서가 필요 없다는 죄 불감증이 더 큰 죄입니다.
그리고 자기 죄는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죄만 붙잡고 시비를 걸뿐 아니라
병자와 죄인을 부르러 오시고 용서하시는 주님께도 시비를 거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