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오늘 어떤 사람이 주님께 구원받을 사람에 대해서 묻습니다.
많은지, 적은지.
이에 주님께서는 좁은 문 얘기를 하십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문이 좁다는 말씀인데 왜 좁습니까?
주님께서 문을 좁게 만드셨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까?
제가 자주 강조하는 말이,
구원받는 것은 받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구원을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시고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시는 공평한 분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우리 문제입니다.
줘도 받아들여야지 받는 것이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리 주셔도 받지 못하는 것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주시는데 왜 받지 않습니까?
그 이치는 아주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무엇이건 우리는 좋으면 받아들이고 싫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원은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서의 구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구원이라면 그 문이 좁지 않을 텐데
구원은 근본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그 문이 좁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 세상 살 때 주님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으며
주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였다고 하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이 세상 끝 날에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하고 하느님 나라에서 내치십니다.
그런데 주님과 함께 먹기도 마시기도 한 사람이 우리가 아닙니까?
주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영락없이 우리가 아닙니까?
우리는 매주 또는 매일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고,
매일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의를 저지른다면 그것이 다 헛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과 먹고 마신 것이 영적인 힘이 되고,
그 힘으로 주님께 들은 말씀 곧 사랑을 실천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오히려 불의를 저질렀다면 아무리 천주교 신자라도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말씀을 끝으로 주님께서 하십니다.
첫째 곧 주님을 알고 지내던 사람이 꼴찌 되고,
꼴찌 곧 주님을 모르고 지내던 사람이 첫째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주님을 알고 지내도 소용없고
주님 말씀대로 사랑해야 사랑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의 좁은 문은,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