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처럼 배워서 아는 사람,
만족할 줄 알고 그래서 바오로 사도처럼 행복한 사람이 되면 정말 좋을 겁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말이 있지요.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도 있고요.
안분지족은 자기 분수에 맞게 편안히 머물면서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안빈낙도는 가난한 처지에도 편안히 머물 줄 알고 도를 즐기는 것입니다.
둘 다 오늘 바오로 사도가 말한 그런 경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만족할 줄 아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어디서 배우고 누구에게서 배웠을까요?
틀림없이 예수님의 행복 선언에서 배웠을 겁니다.
행복이란 만족의 상태이니 만족할 줄 아는 것(知足)이 행복인데
주님께서는 행복 선언에서 아무것 없이 가난해도 행복한 경지를 가르치셨지요.
그런데 여기서 아무것도 없는 가난이란
선 곧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이고
우리는 이것을 최악이라고도 합니다.
만족, 행복을 설명할 때 물 반 잔의 행불행을 예로 듭니다.
물이 잔에 반이 있습니다.
같은 물 반 잔을 보고 어떤 사람은 반밖에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반이나 남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행불행이 갈립니다.
잔이 가득하길 기대한 사람은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지만
선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각오한 사람,
최악을 각오한 사람은 반 잔이어도 너무도 만족하고 넘치도록 행복합니다.
그런데 누가 최악을 각오하겠습니까?
백이면 백, 최선을 기대하지, 최악을 각오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영으로 가난한 사람 또는 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만이
최악을 각오하기에 최악이어도 만족하고 곧 행복하고,
최악이 아니면 더 만족하고 더 행복할 줄 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영으로 가난한 사람(the poor in Spirit)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하느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일 것입니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의 만족은 우리의 모든 욕구를 가득 채우기에
아무것도 없어도 부족함이 없고,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되기를 감히 꿈꾸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