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특강을 하기 위해 전남 장성에 와 있는데 오랜만에 선배 형제를 만나서
코로나를 앓고 난 뒤 건강은 어떠신지 얘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아주 유쾌한 그러나 의미 있는 말을 듣고는 서로 웃었습니다.
그 형제께서 ‘살 때까지 살아야지’라고 하신 겁니다.
이에 제가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이 아니고요?’라고 되받은 겁니다.
농담 반 진담 반의 의미 있는 말을 주고받고 어제오늘 저는
이 말들을 되새김질하게 되었는데 마침 오늘 주제도 죽음과 부활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건가요?
죽을 때까지 사는 건가요?
아니면 살 때까지 사는 건가요?
제 생각에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은, 이 세상의 삶과 죽음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얘기한 그 선배 형제처럼 살 때까지 살려는,
곧 부활의 의지와 희망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더하여 믿음도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죽음에 속수무책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만으로는 죽을 때까지만 살 수 있고,
그래서 부활의 의지와 희망은 도무지 있을 수 없지만,
하느님께는 죽음이 없기에 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에
우리는 부활의 의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오늘 주님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그렇게 믿는 겁니다.
이에 대해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묻는 사람에게 저는 안 믿으면 어쩔 거냐고,
그것을 안 믿으면 무엇을 믿을 거냐고 되받아칠 겁니다.
저는 믿는 쪽을 선택하고,
그래서 저는 믿습니다.
저의 생명은 우연이 아니고,
생명이신 하느님 사랑의 필연이라고.
그리고 내가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생명이신 하느님이 사랑으로 창조하신 존재라면
죽음으로 끝나도록 나를 있게 하셨을 리 없다고.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유한한 생명의 존재인 우리도 자식이 죽는 것을 원치 않고
영원히 그리고 무한히 살게 되기를 원하고
죽었더라도 부활하기를 원치 않습니까?
우리의 사랑이 그리 크지 않아도
우리는 내 자식이 죽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원한 생명이시고 무한한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생명들이 죽음으로 끝나길 원하시겠습니까?
저는 다른 하느님을 믿지 않고 이런 하느님을 믿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음을 믿지 않고 저의 부활을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