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오늘 복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는 주종관계임을 강조하시는 말씀일까요?
하느님은 인간에게 그렇게 인자한 분이 아니시고
인간을 종처럼 부려 먹는 분이시며 이런 하느님께 인간은
낮에는 힘들게 일해야 하고, 돌아와서는 시중들어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쓸모없는 종이라고 굽신거려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일까요?
한 마디로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주종관계임을 강조하는 말씀이겠습니까?
얼마간 그런 뜻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 17장인데 앞선 12장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종을 너무도 사랑하고, 오히려 식탁에서 종의 시중을 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그러니까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주님께서
이제는 ‘착각하지 마라! 너희는 종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일 겁니다.
‘오냐, 오냐 하니까 할애비 수염까지 당기려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손주를 나무라는 말이지만,
할아버지는 이런 나무람에 오히려 괜찮다고 하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그러니까 애가 버릇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얘기는 단지 할아버지와 손주의 얘기만이 아니고,
너무 잘해주면, 미성숙한 사람은 자기 주제를 망각하고 버릇이 없어지는
일반적인 현상을 할아버지와 버릇없는 손주의 예를 들어 얘기하는 것이지요.
사실 성숙한 사람은 잘해줘도 자기 주제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잘해줄수록 고마움을 더 느낄 뿐 아니라
잘해주는 사람을 더 사랑하고 더 존경할 것이고,
자기는 그렇게 잘한 것도 없고 과분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일 겁니다.
충직하고 겸손하고 성숙한 종이라면 자기가 할 바를 다한 다음에도
우리는 주님께 쓸모없는 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비천한 존재이고 비굴해야 하는 종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크시고 넘치는 사랑에 대해서 우리 인간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가르치시는 말씀일 겁니다.
하느님께 사랑받을수록
더욱 겸손해지는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회의를 위해 지방에 와 있습니다.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간신히 올렸습니다.
그래서 내일 혹 강론이 올라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