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11월 12일 토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길게 하는 기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하는 기도가 중요하다
주님께서는 복된 삶을 얻기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면 더 잘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하고 많은 말로 기도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지요마태 6,7-8 참조). 주님께서는 “그분은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한지 아신다면서 많은 말로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고는 또 계속 기도하라고 이르시는 것은 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불의한 재판관에게 지치지 않고 계속 졸라 대어 결국 자신의 말을 듣게 만든 과부의 예를 드셨지요. 그 여자가 재판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정의나 동정심에 호소해서가 아니라 지치지 않고 졸라댔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하면 자비롭고 의로우신 하느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을 배웁니다. 불의하고 사악한 재판관 조차 끊임없이 청원하는 과부를 모른척 할 수 없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50가지 예수 모습 / 안셀름 그륀
19. 빵 예수
우리가 굶주릴 때 먹고 싶은 것 우리의 양식이 되는 것이 빵이다. 그걸 먹어야 살 수 있다. 빵은 우리가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사막을 유랑하던 시절 유다인들은 굶주림에 지쳐 빵이 간절했다. 그때 하느님께서 손수 그들에게 빵을 내려주셨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다. 유다인들은 사막을 헤매면서 이 만나로 배고픔을 달랬다. 예수님은 당신이 바로 우리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빵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생명의 빵입니다. 내게로 오는 이는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고"(요한 6,35). 예수님의 이런 주장은 당시 유다인들을 자극시켰다. 예수님은 당신을 “빵”이라는 인격체로 지칭하셨다.
우리의 극심한 굶주림을 달랠 수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뵐의 소설에 등장하는 케테 보그너 부인 같은 여자는 이 말뜻을 이해한다. 그녀는 예수님이 가난한 삶을 사는 자신에게 희망을 밝혀 줄 분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녀는 성당의 지루한 강론에 감동을 받지 못하지만 “사방에 울려 퍼지는, 걸걸한 목소리의 한 흑인의 노래에” 감격한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103)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11월 영적 수련 성월 1주간 회개/겸손
금주간 성서읽기 1테살 3-5장 / 2테살 1-3장 / 히브 1장
토요일 이웃 종교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예수와 바울의 유일신 신앙
예수의 유일신 신앙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요한, 1 : 14)라는 저 유명한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성육신 신앙'을, 고대 신화적 세계관에서 흔했던 신이 인간 몸을 입고 잠시 인간 세상에 환생한 경우처럼 이해하면 큰 잘못이다. 위의 말은 예수라는 인간의 말씀과 행태 , 곧 그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뜻과 혼연일체가 되어 살았던 분에 대한 신앙 고백적 표현이다. 역사적 예수를 가장 가까이 모시고 살았던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제자나 사도 바울은 예수가 ‘다윗의 혈통을 타고, 나사렛 동네에서 자란' , 자기들과 같은 유대인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분을 지극히 사랑하고 성령을 물 붇듯이 부어주시고, 죽음의 권세에 매어 있을 수 없는 외롭고 진실한 분 이었기에 하나님이 그분을 즉음으로부터 일으켜세워 만인의 구주가 되도록 높이셨다고 증언할 뿐이다.
둘째,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서 <토라>인 <신명기> 6장 4一5절에 나타나는 구절이 모든 율법의 핵심 정신임을 갈파하여 모세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유일신 야훼 신앙을 확인하셨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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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에페소 기도의 집
에페소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생태환경 보존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