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두 열쇠 말은 “낙심하지 말고”와 “지체 없이”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지체 없이 들어주신다는 가르침인데
문제는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느냐 그것이라고 주님은 결론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그런데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과 지체 없이 들어주신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말이 안 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지체 없이 들어주신다면
낙심할 사람이 없을 것이고 끊임없이 기도할 필요도 없겠지요.
하느님의 응답이 지체되니 낙심하고 기도를 중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유의 과부처럼 들어주실 때까지 끈질기게 청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요.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안 들어주실 때가 많고,
들어주시더라도 지체하시는 경우는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청하는 것은 모두,
그리고 청하는 즉시 들어주신다는 믿음은 갖지 말아야 합니다.
끈질기게 청하면 지체 없이 들어주신다고 주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시지 않고,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시지 않는다고.
인간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고.
그러므로 우리가 뱀이나 전갈을 달라면 안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뱀이나 전갈 같은 것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달라고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선이 아니라 이 세상의 선을 좋아하는 겁니다.
어제는 제가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돌아가신 분의 3주기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따져보니 그분이 아프기 시작할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10년 이상을
그러니까 오늘 주님 말씀처럼 끈질기게 기도했는데 그러나 돌아가셨습니다.
10년을 넘게 살게 해주셨으니 제 기도를 들어주신 거라고 할 수도 있고,
기도했는데도 돌아가셨으니 안 들어주신 거라고도 할 수 있지요.
아무튼, 그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길에 90이 넘으신 자매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들들을 잃고 지금 하나 남은 아들마저 앞세우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미 기도하고 있는데도 기도해주기를 또 간절히 청하시는 거였습니다.
그분의 아들은 25년 전에 신장 이식을 받으신 분인데 다시 나빠졌으니
좋아지기가 어렵고,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폐렴까지 앓게 된 상황인데도
이 자매님은 오늘 주님께서 비유로 드신 과부처럼 낙심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래서 저도 물론 기도할 것입니다만 믿음이 약한 저는
그 아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드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은 그 아들이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좋아하는 것이고 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께서 보실 때도 정말 좋은 것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기도대로 지체 없이 들어주실 거라고 믿고 기도할 수 없고
다만 하느님께서 제가 청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리라 믿고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지체 없이 들어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청하는 즉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되는 그때 즉시 들어주신다는 뜻입니다.
꼭 들어주시리라 믿는 것도 큰 믿음이지만
안 들어주시거나 늦게 들어주시더라도 그것이
하느님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 더 큰 믿음임을 묵상하는 오늘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