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는 지금이 어떤 때인지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때는 어떤 때이고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는 어떤 때와 같은 때입니까?
때에는 여러 때가 있고 그 여러 때 가운데 지금은 어떤 때이고,
사람에 따라 지금이 어떤 때인지 다릅니다.
수험생에게는 지금이 놀 때이거나 공부할 때이고,
재산을 굴리는 사람에게는 지금이 땅이나 주식을 사고팔 때이고,
청춘 남녀에게는 지금이 사랑을 만날 때이거나 결혼 적령기이고,
늙은이나 중환자에게는 지금이 생명과 죽음을 놓고 싸울 때이고,
신앙인에게는 지금이 회개의 때이거나 구원의 때 곧 주님께서 오실 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자기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지금이 어떤 때라고 생각하는지 다를 것이고,
각기 자기가 중요시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자기 정체성이 신앙인의 경우, 지금은 늘
회개의 때이고 구원의 때이며 주님께서 오심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그래서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바오로 사도는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고,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됐다고 하고,
주님께서는 지금이 바로 당신이 다시 오실 때이니
우리에게 지금은 그 오실 주님을 깨어 기다리는 대림의 때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잠에서 깨어 주님을 기다리는 때이기에
우리는 오늘 두 단어 곧 잠과 주님을 더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잠이란 단지 물리적인 잠만 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대림 시기에 기도하는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이 더 많아서는 안 되겠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잠이란 주님께 대한 의식이 잠든 것을 말하는 것이니
지금까지 주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더라도 이제는
그 잠 곧 주님을 의식하지 않는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에
물리적으로 깨어 기도만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가 어둠의 행실 곧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를 그만두라고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술을 많이 마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라도 주님께 대한 의식은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술꾼이어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저는 기도나 술을 먹지 않을 때 주님께 대한 의식이 깨어 있는 것보다도
술을 먹었을지라도 주님께 대한 의식이 깨어 있는 것이 더 위대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저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들은 얘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대전에 있을 때 그곳 본당의 열심한 신자들은 술을 많이 먹고 난 뒤에도
집으로 바로 가 잠자지 않고 꼭 성당에 들러 조배하고 가 잠을 잤다고 합니다.
물리적으로는 술에 취했지만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는 취해 곯아떨어지지 않는 위대한 깨어 있음이지요.
그러므로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우리도 다윗의 서원을 상기합시다.
내 집안에 들어가지 않으오리다 * 침대에도 오르지 않으오리다.
이 눈에서 잠을 거두오리다 * 눈두덩에서 단잠을 거두오리다.(시편 132, 3-4)
어제 많은 분이 문자로 저의 축일을 축하해주셨는데
제가 문자를 하지 않기에 일일이 감사하다는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적절치 않지만 이곳에서 대신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