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마리아 찬가는, 어제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시다는
엘리사벳의 마리아 칭송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입니다.
오늘의 찬가에서 마리아는 자기의 기쁨을 감추지 않고 토로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리아를 보면서 우리도 기쁨 찬미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탄을 앞둔 우리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기뻐할 일도
찬미할 일도 없다면, 그리고 기쁘더라도 그 기쁨이 그리 크지 않다면
우린 불쌍하고 대림절을 잘못 살고 무엇보다 한 해를 잘못 산 것일 겁니다.
아무런 기쁨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표시이고,
한 것이 있어도,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에게 기쁜 일이 있다면, 우리는 그 기쁨을
감추거나 누르지 말고 마리아처럼 감사와 찬미로 토해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고,
기쁨을 사유화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인이 아닌 사람은 한해의 기쁨이 자기가 이룬 기쁨이거나
기껏해야 이웃과 함께 이룬 기쁨이지 하느님께서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이룬 기쁨이고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신 기쁨이라면
이 기쁨은 반드시 감사와 찬미로 이어지고 표출되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기쁨 중에 이기주의적인 기쁨이 얼마나 많습니까?
같이 이룬 것을 자기가 다 이룬 것인 양 열매를 혼자 다 따먹고
그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자랑은 하지만 감사는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이룬 것이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그런데 덕이 있는 사람이 감사한다면 신앙이 있는 사람은 찬미할 것입니다.
찬미는 하느님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에 이루신 선과
나와 우리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신 선이 다 하느님 덕분이라고
감사드리는 것이요 감사를 넘어서 칭송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먼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큰일 곧 구원을 찬미한 다음
자기에게 베푸신 자비가 자기를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미침을 찬미합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러니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이룬 것이 있다면 나 혼자 이룬 것이 아니고, 우리끼리 이룬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신 것이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협력을 통해 이루신 것이며,
공동체를 통해 내게 이루신 것이요 나를 통해 공동체에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찬미는 마리아의 찬미처럼
개인의 구원과 공동체의 구원을 모두 찬미하는 노래가 되어야겠습니다.
내일과 모레는 강론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25일 성탄 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남은 대림 시기 잘 보내시어 기쁜 성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