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자
사람들은 아기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한 이유를
복음은 이야기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을 보면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관습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엘리사벳이 여기에서
아기의 이름을 다르게 부른 것은
그 관습을 깨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반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은
즈카르야의 생각을 물어봅니다.
그리고 즈카르야 역시
엘리사벳과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즉 즈카르야 역시 전통을 깨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단순히 전통을 깨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다보니
인간의 규정과 어긋나는 모습으로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규정이 생기고
관습이 생기는 것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규정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고 해를 끼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규정이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규정을 위한 규정으로 적용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규정을 적용하기 힘들고
규정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사람을 존중하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즈카르야는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판에 쓰면서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모습에 사람들은 하느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인간의 관습도 중요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오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규정을 일부러 깨고
의도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즉 규정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기억하고
사람들을 위해 그 규정을 적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 또한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살아가는 방식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