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오늘 히브리서는 하느님께서 새 계약의 중개자이신 주님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느님의 새 법을 새겨주실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처음에는 모세를 통해 계약을 맺으시고,
모세는 그것을 계약의 판에 새겨 간직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모세 대신 주님께서 친히,
그리고 계약의 판 대신 마음에 새로운 계약을 새기게 하셨다는 말씀이겠습니다.
우리말에 명심이라는 말이 있지요.
부모가 자식에게 또는 어른이 젊은이에게 중요한 일을 당부한 다음에
‘이것을 꼭 명심하라’하고 하는데 그 뜻이 바로 마음에 새기라는 뜻이지요.
명심이란 말이 바로 새길 銘자에 마음 心자가 아닙니까?
그렇지요. 중요한 말씀일수록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종이에 적어, 잊지 않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런데 그 종이가 바람에 날아갈 수도 있고
그 종이를 우리가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더 좋은 방법, 제일 좋은 방법은 마음에 새겨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의 관행과 조금 다릅니다.
우리의 명심의 경우 어른들은 말만 하고
그 말을 마음에 새기는 것은 젊은이의 몫인 데 반해
신적 명심의 경우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신 주님께서 몸소 새겨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하느님과의 계약을 새겨주신다는 말입니다.
이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불만이 없도록 쌍방의 이해관계를 잘 고려하여
계약서에 기입을 한 다음 도장을 찍게 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이해관계를 잘 중개하는 사람입니다.
이에 비해 새 계약의 중개자이신 주님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중개자시고,
하느님은 우리 임금이 되시고 우리는 그 백성이 되도록 중매를 서는 중개자십니다.
이에 대해 아쉽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되도록 중매를 서고,
부모와 자식 관계가 되도록 중매를 서는 중개자시면 좋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물론 우리의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심으로
그리고 ‘주님의 기도’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러도 된다고 가르치심으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우리는 그분의 아들이 되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오늘 히브리서가 하느님과 우리 관계가 임금과 백성의 관계라고
굳이 얘기하는 뜻은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건설하기 위해 오신 분임을 얘기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어 사도로 삼으십니다.
이 부르심은 제자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표하여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기둥들이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은 우리도 이제는
하느님의 아들딸로서 사랑에 안주하는 응석받이가 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책임감 있는 백성이요 사도로
부르심 받았다는 자각과 함께 자부심도 가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