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비유는 어떤 대상의 특징을 잡아서
그것과 비슷한 다른 대상을 통해
그 대상을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듣는 사람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대상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해하기는 쉽지만,
비유의 대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것이다 혹은 저것이다'라고
말로 설명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비유가 가장 적합한 방법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고 전합니다.
비유가 아닌 다른 방법을
사용하신 것으로 이해되지만
한편으로는 다르게 이해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그들과 생활하시며
모든 것을 그들과 공유하시는 그 자체가
하느님의 나라이기에
또 다른 말이 필요했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관해
수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 말들이 하느님의 나라를 잘못 이야기하고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하느님의 나라를 직접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아가는 것과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마지막에 가서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말들은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말마디만을 배우고
그것을 전하는 것에만 집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우리의 삶으로 옮겨갈 때
우리는 수 많은 지식이 주는 기쁨보다
더 단순한
그러나 영원한 기쁨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