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공교롭게도 오늘 독서와 복음은 여정과 믿음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왜 믿음이 여정에 필요하겠습니까?
자기 좋아서 떠나고 자신감이 있어서 떠나는 여정이었다면
믿음이 굳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그렇고 제자들도 그렇고,
자기들이 원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떠나라고 하시니 떠난 것이고,
가야 할 목적지도 자기들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시한 곳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도 제자들도 떠나기 싫었을 겁니다.
그 늙은 나이에 떠나라시고 그 밤에 떠나라 하시니 말입니다.
그러니 좋아서 떠난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감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니 자신감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직도 믿음이 없다고 나무라십니다.
제자들의 경우 아직 믿음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한배에 계심에도 겁을 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자들에게 믿음이 있다면 겁을 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주무시고 계셔도 주님은 제자들을 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겁을 냈다는 것은, 주님의 구원 의지와
구원 능력을 둘 다 믿지 않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믿지 않은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다면 주님의 의지와 능력을 둘 다 믿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은,
주님의 능력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의지에 대한 불신일 겁니다.
나는 지금 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 그런데도 주님은 잠자고 계신다고 느낍니다.
오늘 제자들의 표현대로 주님도 나와 같이 깨어 걱정하셔야 하는데
주님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천하태평이시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제자들의 느낌도 우리의 느낌도, 틀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일부러 잠자고 계십니다.
그러나 잠자고 계셔도
사랑이 잠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도 사랑할 때는 사랑이 잠자지 않는데
주님께서는 더더욱 그러시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잠자고 계시는 것은 우리의 인생길에서
풍랑이 최고조에 달하고 우리의 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우리의 구원 갈망도 최고조에 달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고,
그리고 기다리시는 그것이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왜 사랑인지는 지나고 나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우리의 인생길에
주님께서 한배를 타고 계신다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