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오늘 독서와 복음은 아주 짧고 그만큼 주제도 명확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는 착한 행실>, 이것이 오늘 주제입니다.
착한 행실, 이것은 정말 세상을 밝게 하는 빛입니다.
악한 행위가 세상을 어둡게 하고 우리 맘을 절망케 하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착한 행위가 무슨 세상의 빛이고, 세상을 밝게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나는 작은 빛일 뿐 어둠이 아니고 세상을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나의 착한 행위 곧 선행이 대단하다면
세상을 그만큼 더 넓게 그리고 더 밝게 비추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나의 착한 행위는 작게나마 세상을 비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의 착한 행위는 그리 대단치 않고 오히려 작습니다.
그럴지라도 나의 착한 행실을 무시하지도 말고 과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자주 양극단의 잘못을 범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 조금 하고 그것을 대단히 자랑하고 과시하는 한 극단과
이까짓 선행은 선행도 아니고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다른 한 극단이 있는데
과소평가할 경우, 오늘 주님 말씀처럼 선행을 함지로 덮어두거나
더 나아가 선행을 하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릴 수도 있으니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은 크고 작음으로 인해, 하거나 말거나 하지 말고,
크거나 작거나, 해야 할 것이기에 하고, 사명이기에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선행은 겸손으로 할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어둠은 참 빛이신 주님께서 없애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우리보고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당신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빛이라고 하시고,
세례자 요한과 우리는 그 빛의 증언자라고 하는데 이것이 맞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작은 착한 행위는 참 빛을 증언하는 빛이고,
그 빛에서 빛을 받아 비추는 빛이기에 겸손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선행은 초승달이든 보름달이든 달과 같습니다.
태양 빛을 받아 비추는 달 말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선행은 사랑으로 할 것입니다.
이 말은 자기만족으로 선행을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간혹 우리는 선행을 했다는 자기만족을 얻기 위해 선행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선행은 어쩌면 선행도 아니고 세상의 빛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우리 선행은 그리스도를 낳는 선행이 되어야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라고 하면서
“표양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거룩한 행위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습니다.”라고 얘기하는데, 우리의 선행이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악행이 근근이 주님을 믿던 사람을 교회로부터 떠나게도 하고,
우리의 선행이 주님을 믿게도 하는데 그것은
그 선행이 비록 아무리 작아도 주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작은 착한 행실로라도 그리스도를 낳는 어머니들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