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세의 전환.
저만 그런지 모르지만, 사순시기가 다가오면
왠지 부담감이나 긴장감도 같이 다가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여서 며칠 전서부터 이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낼까,
부담감과 긴장감을 가지고 생각에, 생각을 더 하다가 어제 문득
은총의 사순시기라고 하는데 이런 자세여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며
태세의 전환, 이것이 사순시기를 옳게 맞는 것이요, 회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악에서 돌아서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되지만
하느님 자비에로 돌아서는 거라고 생각하면 기꺼울 것이고,
단식하고 좋아하는 술을 끊는 것을 생각하면 우울하지만,
단식한 것으로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마음을 바꾸면 뜨거워지겠지요.
그러다가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으니 다음 구절,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란 말씀이 눈에 뜨였는데,
그런데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긴 받았다는 뜻인가?
아니면, 요즘 말로 은총을 개무시하여 아예 받지도 않았다는 뜻인가?
저의 경우, 은총을 개무시하지는 않고
받을 때는 감사히 잘 받으나 오래 간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은총을 흘려버리거나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은총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는데,
이 선물을 귀히 여기지 않아 처박아 놓거나 남 줘 버리는 것과 같지요.
귀히 여긴다면 선물을 열어보고 또 열어보는 은총의 Revival이 이뤄질 텐데.
그렇습니다. 귀히 여겨 은총의 Revival이 이뤄진다면,
말 그대로 은총이 매일 새록새록 되살아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기도할 때 사람들이 보라고 기도하지 않고,
골방에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사랑에 오래 잠길 것이고,
사랑의 선물을 몰래 꺼내 보고 또 꺼내 보고 할 것이며,
그때마다 사랑이 되살아나고 사랑이 되살아남으로써 나도 되살아날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받지 않는 사람은
이웃도 되살아나도록 이웃사랑 곧 자선에 그 은총을 쓸 것입니다.
이 경우, 물론 자선을 Showcase 용으로 다시 말해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진정 사랑해서 하겠지요.
사실 진정한 자선이야말로 은총을 가장 귀하게 받는 것입니다.
약 한 알로 여러 사람의 병이 낫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웃사랑은 하느님 사랑을 나눠 먹는 것이고 자선은 그런 거잖아요?
우리가 하는 단식과 재계도 하느님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겁니다.
근자에 제가 방심과 조심을 자주 얘기하는데
방심할 때 지갑을 도둑맞기 쉽듯
조심하지 않고 방심하면 하느님 은총도 헛되이 사라집니다.
단식이나 재계는 우리 마음이 풀어지지 않도록(방심하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붙잡게 하는 것(조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이고 구원의 날이라고 합니다.
‘때’란 ‘기회’의 다른 말입니다.
‘기회’란 또 ‘위기’의 다른 말입니다.
우리가 현명하다면
이 사순시기를 구원을 위한 기회의 때가 되도록 태세 전환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