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는데
세상의 빛이신 주님께서 내게도 빛이신가?
“주님께서 나의 빛 내 구원이거늘 내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께서 내 생명의 바위시거늘 내 누구를 무서워하랴?”
이 시편 27편처럼 세상의 빛이신 주님이 나의 빛이신가?
지난 번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실망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 실망감을 모르지 않고 전혀 불감不感하지는 않지만
저는 그렇게 실망하거나 적어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새 대통령에 크게 기대를 하거나
새 대통령을 나의 빛, 우리의 빛으로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살아가는 가운데 자주 어둠을 체험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어둠을 보고 작은 어둠을 느끼는 겁니다.
빛을 보지 않고 빛의 뒤안인 그늘을 보면서 느끼는 어둠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빛을 봐야 어둡지 않습니다.
빛을 받아 비추는 것들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 해보다 햇빛을 반사하는 달이 더 아름답고 신비하기는 하지요.
너무 눈부셔 볼 수 없는 해보다는 볼 수 있는 달이 아름다운 거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햇빛을 받을 때의 얘기입니다.
햇빛을 거의 잃는 그믐에는 달도 어둠입니다.
지금 새 교황님이 탄생한 것을 놓고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들떠 있거나 그렇게 호들갑떨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프란치스칸들은 교황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쓴 것을 놓고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평을 하고,
예수회원들은 예수회원이 교황이 되었다고
혹 인간적으로 기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뻐하고 우리 서로 축하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지만
그러나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보다는 기도를 더 해야 할 겁니다.
프란치스코를 이름으로 택하신 분이 또 다른 프란치스코가 되어
우리 교회를 다시 일으키는 교황님이 되시라고.
세상의 빛이신 주님의 빛을 받아 세상의 빛이 되시라고.
보름달을 기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믐달이 되지 말고
보름달 교황님이 되시라고.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보름달이 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