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3년 2월 24일 금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마태 9,14)
종교 계율이 갈라놓은 그들을 악의라는 유대가 묶은 것이 아니라면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공동으로 지닌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이럴 때 시샘은 방향감각을 잃습니다. 사람들을 가르는 데 익숙한 질투가 이때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주님보다 못하게 볼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요한보다 앞세울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똑같이 나쁘게 말했습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히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어째서냐고 했느냐? 너희는 단식을 하고 싶어 히는 것이 아니라 율법때문에 한다. 단식은 단식하는 이를 나타내지 않고 단식을 명하는 이를 나타낸다. 마지못해 단식하는 너희에게 단식의 열매는 무엇이냐?’
-페드루스 크리솔로구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50가지 예수 모습 / 안셀름 그륀
30. 발 씻어 주는 예수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들어올림’이라 생각했다. 예수님은 죽음의 흙바닥에 이르기까지 몸을 굽혔는데 하느님은 그런 예수님을 들어올려 영광스럽게 하셨다. 그야말로 역설적이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을 모세가 사막에서 뱀을 청동 지팡이에 매다는 모습과 비교한다. 독사에 물린 사람도 지팡이에 높이 달린 뱀을 쳐다보면 상처가 치유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팡이에 매단 뱀은 치유의 신, 의사의 수호자 아스클레피오스를 상징한다.(148)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2월 성령 열매성월 3주간 기쁨 / 선행
금주간 성서읽기 마태 5-8장
금요일 성인의 날
영적 삶의 샘(디다케에서 아우구스티노까지), 요한 봐이스마이어 외 지음
오리게네스
영적 삶의 길에 놓인 정류소들
영혼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갖게 되어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이르자 하느님께서는 영혼에게 당신의 계명을 내려주십니다. 이제 영혼은 하느님의 신비와 천상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능력을 서서히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욕망의 기념탑들’에 도달합니다. ‘욕망의 기념탑들'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바로 ‘욕망들’이 땅에 묻힌 곳, 모든 욕망들이 사라져 버린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육체가 이제 더 이상 정신을 거슬러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육체의 욕망이 함께 죽어 버린 것을 의미합니다(로마 7,4). 그 다음에 이들은 “하세롯”에 도달했습니다. 이 말은 완전한 농가 또는 복됨을 의미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여정에 있는 영혼은 점점 더 진보하여 이제 질서정연한 상태에 이룬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욕망들을 땅에 묻고 죽음에게 내맡겨 버림으로써 이제 먹을 것이 풍부한 잘 정돈된 농가에 도달하게 되었고, 복된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육체의 욕망으로부터 고통을 당하지 않는 영혼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 다음에 진을 친 곳은 “리싸”입니다. 이 말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칭찬할 만한 유혹을 의미합니다. 영혼이 이렇게 큰 진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여기서 사람들은 영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을 벌이는 것은 하나의 보호막을 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크고 먹음직스런 고기라 할지라도 소금으로 절여 두지 않으면 이내 묽어지고 부패하고 말듯이, 유혹의 소금으로 단련하여 지속적으로 절여 두지 않는 영혼도 이내 나약해지고 부패하고 맙니다. 그래서 성서에 다음과 같은 말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드리는 곡식 예물에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한다”(레위 2,1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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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에페소 기도의 집
에페소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생태환경 보존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