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는 악행을 끊고 선행을 하고 욕망을 끊고 사랑을 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이라고 아주 짧은 강론을 한 바 있는데
오늘도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회개가 바로 사랑과 선행이라는 점에 대해서
그리고 단식의 결과는 반드시 사랑과 선행이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오늘 독서와 복음이 고생하는 이를 흡족하게 하고,
병든 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지금 세계적으로는 전쟁과 지진이 발생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고,
멀리 가지 않고 우리 주변만 해도 가난과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분이 많은데
자기 건강이나 몸매를 위해 우리가 단식한다면 그것은 너무 한가한 짓이고,
주님을 위해 단식한다 해도 그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행위가 아니지요.
비근한 예로,
지금 형제가 가난하고 병까지 들었는데
그런 형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부모에게 보약을 지어드린다면
그 돈으로 형제 도우라고 하시지 보약 드실 부모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보약이 필요 없고 우리의 사랑도 필요 없습니다.
보약이 필요하고 우리 사랑이 필요한 것은 가난하고 병든 이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지
하느님께 애정결핍이 있으시거나
그래서 우리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잖습니까?
하느님은 Self Sufficient God이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의 사랑이 필요할 정도로 부족함이 없으시고,
하느님 삼위 안에서 서로 사랑하시고 자체적으로 흡족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서도 이웃을 흡족하게 하라고 하시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오히려 우리를 흡족하게 하실 거라고 가르칩니다.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우리는 불만이 많고
우리의 불만을 채워달라고 자주 징징대는 사람입니다.
어떤 때는 사람에게, 어떤 때는 하느님께.
그런데 이런 우리가 어떻게 남을 흡족하게 하냐고 또 징징댈 수 있는데
이런 우리에게 오늘 독서의 하느님과 복음의 주님은
이제 애 짓은 그만두라고,
언제까지 애처럼 젖 달라고 징징댈 것이냐고,
이제는 네 젖을 아기에게 물릴 어른이요, 엄마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는 건강하다.
너는 사랑할 수 있다.
너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