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사도들과 원로들은 사도 회의의 결과를
안티오키아 교회에 알리면서 ‘성령과 우리는’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우리는 이렇게 결정했다고 하지 않고 성령과 같이 결정했다고 하는 겁니다.
이것을 보면서 저는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성찰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할지는 아주 쉽게 답이 나왔습니다.
무엇을 하든 사랑으로 해야겠다고 말입니다.
청소를 해도 사랑으로 하고,
공부를 해도 사랑으로 하고,
대화를 해도 사랑으로 하고,
요리를 해도 사랑으로 하는 겁니다.
특히 요즘 저는 여기 밥상을 하면서 저의 조리가 정성을 넘어 사랑이 되고,
식탁에서의 봉사와 대화가 사랑이 되고 영적 대화가 되게 하려 애썼습니다.
이렇게 애를 써왔지만, 오늘 <성령과 우리는>이라는 말씀을 접하면서
부족함, 곧 '성령과 함께'가 빠져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잘못을 범하곤 합니다.
뭐든 사랑으로 하기로 잘 결정했다고 안심하였는데
사랑으로 하기로 성령과 결정하지 않고 그래서 사랑도 성령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저 혼자 그리고 제힘으로 하려 하는 잘못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옳고 좋은 것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결정하고 완수하느냐가 또한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등급 매기기를 자주 하는데
결정과 관련하여 등급을 매기면 이럴 것입니다.
결정에 있어서 제일 미성숙한 것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결정을 남에게 미루는 것일 겁니다.
결정 장애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수준으로 결정 못하는 경우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이든 수도원 입회든 결정을 제때에 못하여
뒤늦게 수도원에 지원하는 비율이 높아지는데 부모의 사랑이 넘쳐서
부모가 대신 결정하고 그런 부모 밑에서 결정에 책임지고 싶지 않은
자녀가 순종의 미명하에 결정을 미루다 보니 그리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에 비해 스스로 결정하고 그것도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정하면
그만큼 성숙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럴 경우, 자기 결정에
책임지기 위해서 결정한 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성실할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서 잘하는 것도 성숙함이지만
같이 결정을 내릴 줄 아는 것이 더 성숙합니다.
같이 결정 내리지 못하고 독불장군식으로 결정한다면
이런 결정을 가지고 성숙하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같이 결정을 내릴 줄 아는 것보다 우리 신앙인에게 더 성숙한 것이
바로 오늘 초대 교회 사도들처럼 성령과 함께 결정을 내리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런 원의로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성령 송가’를 부르며
회의를 시작하는데 시작은 그렇게 하고 실제로는 자기주장들을 내세웁니다.
이런 경우 이것을 절반만 성공한 것이랄까,
절반만 성숙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모르지만,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성령과 함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함을
오늘 초대 교회 사도들의 결정으로부터 배우는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