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미사를 드리는 오늘,
저는 우리나라 현실을 보며 그리고 우리 교회의 현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남북의 화해와 일치와 관련하여 현 정부는 폭주 기관차 같고,
우리 교회와 국민은 기도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현 정부는 북한을 주적이라고 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고
화해와 일치와 반대되는 길을 가는 것을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형제를 형제가 아니라 원수로 생각하는 것을
잘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에게 잘못했다고 해서 형제를 원수로 여기면
부모는 그것을 잘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용서와 화해가 쉽지 않더라도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신앙인이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우리는 남북의 관계도 성찰해야 합니다.
북한과 남한은 우리인가? 우리가 아닌 남인가?
하느님 아버지는 북한과 남한의 아버지인가? 남한만의 아버지인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기도드릴 때
우리는 북한은 배제하고 기도 드리는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할 때 북한에게는 주지 마시고
우리에게만 주시라고 기도 드리는 것은 아닌가?
저희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해달라고 할 때 북한은 예외인가?
진정 하느님 아버지는 모든 이의 아버지이고,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우리에게 아버지이신 하느님 아버지는
북한의 우리 형제들에게도 아버지라고 믿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큰 상처를 안겼던 일본 사람들을 우리의 형제라고 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지만
마음은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북한에 대해서도 그리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의 과거 잘못을 묻지 않고 미래지향적으로 관계를 정상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북한과는 더더욱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믿는 우리라면
저처럼 주님의 기도를 바꿔 바치는 것도 좋을 것이고,
그런 뜻에서 제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를 소개하며 오늘 나눔을 마치고자 합니다.
“북녘의 형제들에게도 아버지이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남녘에서도, 북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느님
북녘의 형제들에게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그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외면하고픈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그들을 악으로 보는 악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