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생명의 문은 왜 좁고 멸망의 문을 왜 넓을까요?
생명의 문이 좁은 것은 많은 사람이 못 들어오도록
하느님께서 일부러 좁게 만드셨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다시 말해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기를 하느님께서 원치 않으셨고,
일부 개신교에서 주장하듯 십사만사천 명만 정원으로 정하셨기에 좁은 걸까요?
그렇다면 생명의 문이 좁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이 좁은 것이고
하느님 사랑의 품이 비좁은 것일 겁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닐 거라고 믿는 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성심성월을 지내며 우리가 믿는 믿음은 하느님의 마음은 하해와 같다는 것이고,
주님께서도 하늘에는 있을 곳이 많으며 당신은 제자들과 우리가 있을 곳을
마련하려고 먼저 하늘에 올라가신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문이 좁은 것은, 그 문이 하늘 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문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넓은 길이고 넓은 문이지만
하늘로 오르는 길과 문은 산을 오르듯이 올라야 하기에 싫고 힘들고 좁습니다.
시편에서 이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의 산에 오를 이 누구인고?
그 손은 깨끗하고 마음 정한 이,
헛 군데에 정신을 아니 쓰는 이로다.”
이 세상 길은 자기 욕심대로 가고,
가고 싶은 대로 가기에 편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가지만
하늘길은 손도 마음도 깨끗하고 정신을 오로지 길 가는 데만 써야 하기에
가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먼저 그 길을 가시며 같이 가자고 초대하시고,
당신을 따라오면 혼자서는 가기 어려워도 갈 수 있다고 부르십니다.
사실 주님께서 하늘에서 굳이 이 땅에까지 내려오신 것은
우리를 그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해서인데
문제는 그 길이 꽃길이 아니고 십자가 길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꽃길이라 즐기며 노니다가 하늘에 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느님께서 하늘길을 가시밭길, 십자가 길로 만드시고
그래서 그 길 빨리 벗어나게 하시려는 것 아닌가 하고
제가 생각하는 것은 너무 억지춘향인가요?
억지춘향일지라도 하느님 사랑을 그렇게라도 믿고 싶은 오늘 저입니다.
내일부터 금요일까지 강론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