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오늘 주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런 믿음’이란 어떤 믿음일까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이런 믿음이란 이 정도의 믿음은 본 적 없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믿음의 깊이로 말하면 이스라엘인들의 믿음보다 훨씬 깊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깊은 믿음이란 자신을 아주 낮춘 자, 곧 하심과 하인의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백인대장은 下心과 下人의 대표입니다.
불교에서 하심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을 말하는데
자신은 땅바닥까지 낮추고 남은 하늘까지 높이는 그런 마음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자기를 낮출수록 믿음은 깊어진다는 겁니다.
사실 교만할수록 하느님을 믿지 못하니 겸손할수록 믿음이 깊어짐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백인대장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 그 누구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지
않았는데 이방인인 그는 예수님을 보고 즉시 “주님”이라고 불렀던 것이고,
주님을 누추한 자기 집에 모실 자격이 없다고도 한 것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스승 정도로만 알았고,
기껏해야 예언자 정도로 알았는데 백인대장은 주님으로 믿었던 것이고,
그런 주인을 종인 자기의 집으로 모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더 놀라운 믿음 고백을 합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오셔서 제 죽은 딸을 살려달라거나 손을 얹어달라고 하는데
그는 그러실 필요가 없다는,
말씀만으로 다 이루실 수 있는 분이기에 그럴 필요 없다는 믿음을 보입니다.
창세기 1장의 하느님은 2장의 하느님보다
초월적인 하느님이요 능력의 하느님입니다.
2장의 하느님은 땅에까지 내려오시어
사람의 코에 당신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시지만
1장의 하느님은 어디 계신지 알 수 없는 곳에 계시며 그저 말씀으로 창조하십니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 말씀에 생사가 달린 하찮은 존재임에 반해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을 당신 말씀으로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능력의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백인대장은 이방인이면서도
예수를 이런 주님이요 하느님으로 믿은 것이고,
주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본 적이 없다고 하신 겁니다.
아무튼, 우리는 하심과 믿음의 관계를 오늘 백인대장에게서 배우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