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오늘 요한의 제자들은 왜 주님의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지 주님께 묻습니다.
왜 단식하라고 하지 않으셨는지 따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단식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단식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결론으로 말하면 단식을 하든 하지 않든 사랑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단식할 수도 있고,
사랑으로 단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단식하지 말고 식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는 식음을 전폐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으로만 단식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먹을 때도 사랑 때문에 먹고 사랑이 발생하게 하며,
굶을 때도 사랑 때문에 굶고 사랑이 발생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결코 저를 자랑하는 뜻에서 하는 얘기가 아닌데
전과 비교하여 저는 단식과 식사 문제에서 자유스러워졌고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전에는 일생을 거의 매일 단식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를 생각하며,
먹더라도 물이나 재를 타서 음식을 먹은 프란치스코를 생각하며,
물조차도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지 않은 프란치스코를 생각하며
먹어도 굶어도 괴로웠고, 먹어도 굶어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이제는 거의 단식하지 못하지만,
그로 인해 그리 괴롭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영적인 나태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사랑의 자유 때문입니다.
사랑하기에 먹고 사랑으로 먹으며
사랑하기에 단식하고 사랑으로 단식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예를 들면 달걀의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봉사자들 가운데 종종 달걀을 삶아 가져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에 같으면 받고도 까먹거나 사랑 없이 먹었는데
요즘은 달걀을 먹지 않고 사랑을 먹습니다.
그리고 달걀을 주신 분의 사랑을 만납니다.
단식도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재는 먹는 것만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단식도 사랑 때문에 하고 사랑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가 꼭 오리라고 믿고 희망합니다.
여러분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