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라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너무 지당한 말씀이기에 그 뜻을 새기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을 한 번 새겨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유심히 보니 받는다는 말에 뜻을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내 계명을 받아”라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계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하느님 사랑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주님의 계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계명을 받아들여야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고,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조건적인 사랑이라고 오해치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 친히 말씀하신대로 하느님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가리지 않고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시니 사랑을 가려서 주시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니 주시는 분의 문제가 아니라 받는 우리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준다고 다 받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께서 주신다고 우리가 다 받는 것도 아닙니다.
부탁을 받아도 그 부탁을 우리가 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이 부탁을 하면 거절할 것이고
싫어하는 것을 부탁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만 주님의 계명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계명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
아니 사랑하는 사람만 주님의 계명을 받아들일 겁니다.
더 나아가서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이의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사랑은 아무리 준다 해도 우리는 싫어하고,
그러기에 아무리 사랑일지라도 받아들이지 아니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사랑을 사랑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이라면 모든 사랑을 다 사랑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을 사랑치 않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사랑한다 해도 원치 않는 사랑이 있습니다.
저희 프란치스칸 성가 중에 “사랑을 사랑 않는 인생을
성부께 전구하소서.”하고 프란치스코에게 기도하는 가사가 있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정말 사랑을 사랑치 않는 영혼,
특히 인간의 사랑은 사랑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은 사랑치 않는 영혼,
이런 영혼이 있다면 참으로 가엾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치 않아서 가엽기도 하지만
주시는 사랑을 받지 않아서 가여운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가엽다고 하기 전에
내가 그 가여운 신세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