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내 잔을 마실 것이다.”
오늘 야고보 사도 축일의 복음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어는 엇갈림이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신 뜻과 야고보 사도의 따르는 뜻이 엇갈렸다는 뜻입니다.
뜻이 엇갈리다!
그렇습니다.
주님과 야고보 사도 간에 처음에는 뜻이 엇갈렸습니다.
주님의 뜻은 야고보 사도가 당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
당신과 함께 고통의 잔을 마시게 되는 것이었는데
야고보 사도의 뜻은 꽃길을 가고 축배를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고배를 마시는 것임을 알았다면 아예 따르지를 않았을 텐데,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마침내 뜻이 엇갈리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야고보와 요한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났을 때
주님께서는 적지 아니 실망하셨겠지만, 그것을 드러내시지 않고,
당신께서 마실 고배를 너희도 함께 마실 수 있겠냐고만 물으십니다.
이에 야고보와 동생 요한은 마실 수 있다고 호기롭게 대답하는데
주님께서도 너희도 마시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그래서 그 예언대로 야고보 사도는 첫 번째로 수난하게 됩니다.
뜻은 엇갈렸지만, 운명은 엇갈리지 않은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야고보 사도가 자기의 뜻이 좌절되었을 때,
그제서야 자기 앞에 놓인 운명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고,
그때라도 엇갈렸던 자기 뜻을 주님의 뜻과 일치시켰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모범이 되는 점이고,
이 축일을 지내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께로 갈 때
나의 성공과 성취를 목적으로 갔다가도
그것이 주님 부르심의 참된 길이 아님을 알게 됐을 때
그때라도 주님과의 일치로 나의 목표를 바꾸는 겁니다.
우리도 야고보의 어머니처럼 수없이 청하고,
우리도 야고보처럼 수없이 주님께 청합니다.
그런데 마리아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창설자 마리 드 라 빠시옹의 말씀처럼
우리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하고,
그래서 주님께 청원할 때 처음엔 성공과 성취를 주십사 청했다가도,
궁극적으로는 성공과 성취가 아니라 사랑과 일치를 청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