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오늘 부자 청년 얘기의 시작은 부자 청년의 질문이랄까 요청에서 시작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그 비법을 알려달라는 것 말입니다.
사실 이런 젊은이는 꽤 괜찮은 젊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면에서 그렇고,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하는지 묻는 면에서 그렇고,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꽤 괜찮은 젊은이이고 어떻게 보면 완벽한 젊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계명을 다 준수했는데 아직 부족한 것이 뭐 있냐고,
더 해야 할 것이 있느냐고, 어떻게 보면 의기양양하게 질문하는데
주님께서는 아직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계명을 다 준수했다고 해서 완전한 사람은 아니라고 답하시는데
그것에 제게는 완벽하다고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말로 들립니다.
그래서 완벽한 사람과 완전한 사람의 차이를 생각게 하는데
결론적으로 볼 때 주님의 말씀은, 계명의 완벽한 준수가
완전한 사람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말씀이겠습니다.
십계명 중에서 사람들에게 나쁜 짓 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씀인데 그러면 완전한 사람의 요건은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완벽과 완전은 기준부터 다릅니다.
청년의 완벽은 계명의 준수이고 주님의 완전은 사랑의 실천이며,
청년의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이고,
주님의 영원한 생명은 저세상 곧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첫째 요건은 포기입니다.
하늘나라를 위해서 이 세상 것들을 다 포기할 수 있어야 완전합니다.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완벽하게 다 갖추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위해서 가진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완전함입니다.
두 번째 요건은 나눔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이웃 그것도 가난한 이웃과 나눠야 완전합니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다 지켰느냐는 질문에
부자 청년이 어려서부터 잘 지켰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는데
실은 나쁜 짓 하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완벽했는지 몰라도
가진 것을 다 나누는 면에서는 부족함이 있었음이 드러난 겁니다.
나쁜 짓 하지 않은 것도 사랑이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사랑이지 완전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요건 따름입니다.
주님을 따라 하늘나라에 가야지 완전한 사람이지
하늘나라에 가고 싶지 않고 그래서 주님을 따라가기도 싫다면,
이것이 완전한 사람에게 있어 가장 결정적인 결격 사유입니다.
이러니 완전한 사람 되는 것,
부자 청년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 만만하게 생각하고 의기양양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완벽해도 이 면에서 완전하지 않다는,
부족하다는 생각과 자세를 늘 지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