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떠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이롭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신이 제자들과 함께 게시면 해롭다는 얘기인가요?
그럴 리 없으시지만 또한 그러한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은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하나라도 이로우면 이롭지 해로울 리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영적으로 구원하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병도 고쳐주시고,
악령도 내쫓으시고,
빵도 배불리 먹이시는 등
이 세상살이에도 적잖이 도움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로움보다 더 중요한 이로움이 바로 영적 구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물론이고 제자들도 주님을 이 세상 구원자, 곧
아주 능한 의사,
아주 능한 구마자,
아주 능한 사회복지가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로움을 찾는 사람들,
이 세상 구원자를 찾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함께 계심은,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이로움이 아니라 해로움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참 구원을 막아버리고
세상 구원에 머물게 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렸지만 저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그것은 세상사적으로 볼 때 저에게 비 구원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그렇게 일찍 아버지를 데려가실 거면
왜 저를 태어나 고생하게 하셨냐고 하느님을 원망을 하였었거든요.
그러나 지금 저는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 계시었기에
하늘의 아버지를 일찍 만났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성령을 보내주시기 위한 주님의 떠나심은 멀리 내다보는 긴 사랑이고,
성령을 만나기 위한 주님과의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아픈 사랑입니다.
그 긴 사랑과 그 아프고도 깊은 사랑을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아프고도 긴 시간을 지나 성령께서 오시면 그때서야 알게 될 것입니다.
한 해 푸르렀던 잎이 시들고 떨어져야 새잎이 돋듯이
떠나야 할 것은 떠나고 와야 할 것은 와야 합니다.
아니, 떠나야 할 것이 떠나야 와야 할 것이 옵니다.
그런 뜻에서 묵상해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떠나야 할 존재입니다.
성령의 자리를 내가 대신 차지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새싹 이 돋아나기를 ,말씀 을 성전 삼아살기를 감사드립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