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욕을 가끔 내뱉는 저를 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문제의식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욕을 입에 결코, 담지 않았고
욕설이 난무하는 군대 있을 때도 욕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제가 전보다 더 나쁜 놈이 된 것이고,
제가 전보다 더 화가 나 있는 걸까요?
반대로 전에는 제가 좋은 사람이었고
별로 화가 나지 않았던 걸까요?
그렇지 않고 어떤 면에서 보면 그 반대입니다.
다만 지금은 전보다 누르는 힘이 떨어진 면도 있고
죄의식이 약해져 덜 누르는 면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죄의식이 약해진 데는
욕쟁이 아줌마가 욕은 걸쭉하게 해대지만
마음은 따듯하고 그 욕에 오히려 정이 있듯이
욕에 미움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이 실리지 않기 때문인 면도 있지요.
어쨌거나 말은 존재의 표현이랄까 표출입니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미움이 있으면 미움이 말로 표출되기도 하고,
미움을 감추려고 말을 하지 않으면 눈으로라도 표출이 됩니다.
화가 나 있으면 그것을 풀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표출됩니다.
잠시 그 화를 누르거나 가둘 수 있지만 영원히 가둘 수 없고,
화가 쌓이면 화병이 되거나 폭발하게 됩니다.
미움과 화만이 아니라 사랑과 온유도 마찬가지이고
슬픔이나 기쁨도 마찬가지이며
괴로움이나 즐거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있는 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미움은 감추고 사랑만 드러내고 싶지만 미움이 있는 한 그럴 수 없습니다.
미움을 드러내지 않을 방법은 미움이 안에 없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독설이나 상처를 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설이나 상처 주는 말은 그 존재가 악독하기에 나오는 것이고,
존재가 악독해지는 것은 악이 그 안에 오래 쌓여 독해지기 때문인데
그 악의 독이 해독되기 전에는 독설과 상처 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선한 열매를 맺으려면 존재가 사랑과 선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존재가 악하면서 선의 열매 맺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위선으로 선한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고 그래서 자주 인용하는 불교의 말이 있습니다.
蛇飮水 成毒 牛飮水 成乳(사음수 성독 우음수 성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이루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이룬다.
智學 成菩提 愚學 成生死(지학 성보리 우학 성생사)
지혜로운 배움은 보리를 이루고 어리석은 배움은 생사를 이룬다.
같은 물을 먹어도 뱀은 독을 만들어내고,
아무리 우유를 먹어도 독을 만들어내니
남을 죽이는 독이 아니라 남을 살리는 젖을 만들어내려면
뱀과 같은 존재에서 소와 같은 존재로 변화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같은 이치를 가시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가지고 가르치시는
오늘 주님의 말씀에 존재적 변화로 응답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