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해 주셨음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즉 용서는 우리가 해야할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의 숙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자연스럽게 용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았다면
그리고 그것을 계속해서 받을 수 있다면
우리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는 용서해야 한다는 것에
집중하기에 앞서
하느님께서 나의 허물을 용서해 주셨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허물을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용서 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용서 받은 것을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참된 용서의 경험이 없어서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용서가
진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시는데
사실 그 조건을 다는 것은
결국 인간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저것은 용서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저 용서 받기 어렵다고 생각하다보니
그것을 기워 갚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을 기워 갚아야만
용서가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진정으로 용서 받았다고 느끼는 경험은
거의 없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너무 엄하신 분으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정의의 심판자, 무서운 심판관으로
생각하는 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용서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도
하느님께서 좋지 않게 보실 것이기에
나의 허물은 또 늘어납니다.
허물이 늘어나면서
하느님을 마주하기 더 싫어지고
두려워집니다.
그렇게 점점 하느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화해보다는 미움으로 변해갑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에 앞서
나는 하느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사랑의 아버지로 경험할 때
우리는 조금은 편안하게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