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쟁과 설전에
병적인 열정을 쏟습니다. 이러한 것에서부터 시기와 분쟁과 중상과 못된 의심과
끊임없는 알력이 나와, 정신이 썩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 번져갑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은 주님의 건전한 말씀과 신심에 부합하지 않으면
교만해지고 교만으로 인해 각가지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만의 첫 번째 결과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함입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우선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그런데 진리를 깨달아야 할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달아야 하며,
-어리석기에 자기가 대단한 줄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줄 착각하고,
반면에 자기가 얼마나 유한한지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깨달아 겸손해지고 지혜롭게 되면
-우리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란 것을 깨닫게 되고,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무엇이 불행하게 하는지 곧
사랑과 가난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교만과 욕심이 불행케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교만은 이 모든 것을 다 깨닫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어리석게도 잘난 척하고 남을 무시하며
그래서 싸움닭처럼 누구하고든 싸우려고 덤벼들게 하는데
이것이 교만의 두 번째 결과이며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병적인 열정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가히 병적이라고 할만합니다.
싸우지 않고 평화로이 사는 것이 정상이고 행복인데
나보다 잘난 놈 있으면 나와 봐 하는 식으로 싸우려 들고
싸우지 않으면 심심하고 싸우는 데서 자기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런 병적인 열정에서
시기와 분쟁과 중상과 못된 의심과 끊임없는 알력이 나온다고 하는데 당연하지요.
교만의 세 번째 결과는 정신의 타락입니다.
그런데 병적인 열정과 정신의 타락이 실은 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얼마간 교만하다고 할 수 있는데
교만이 어느 정도를 넘으면 누구도 그것을 고쳐줄 수 없을 정도가 되고,
정신마저 제정신이 아니게 하거나 썩어빠진 정신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열정이나 정신 모두 어딘가에 힘을 쏟게 하고 어딘가로 치닫게 하는 힘인데
진리에 바탕을 둔 건강하고 건전한 가르침과 관계에 힘을 쏟거나 향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병적인 열정이고 썩어빠진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요즘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악마가 그렇게 몰고 가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아무런 통제 없이 각자에게 맡기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자유롭게 무한 경쟁하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까?
이 무한 경쟁의 삶이 요즘 젊은이들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고 병들게 하며,
경쟁에 적응치 못하거나 패배한 사람을 자폐하게 하거나 칼을 들게 하는 겁니다.
요즘 우리 대통령이 말끝마다 자유를 외치고 실로 자유가 좋은 것이긴 한데
자유는 위험한 칼과도 같고 요즘 칼부림을 자주 보듯 참으로 위험한 겁니다.
정신병자에게 칼이 들려있다고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시면 알 수 있겠지요.
옳게 쓸 줄 알면 다시 말해서 사랑하는 쪽으로 쓰면 너도나도 모두 행복케 하지만
잘못 쓰면 다시 말해서 이기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경쟁적으로 쓰면
앞서 봤듯이 사회 전체가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여 모두 불행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