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비유에서 포도밭 임자는 하느님,
소작인들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
소출을 받기 위해 파견된 이들은 예언자들
그리고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유를 우리가 알아듣는 것처럼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도 알아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복음사가는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듣기에
이 비유는 거북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당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을 아시면서도
예수님께서 굳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실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이 비유를 알아듣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알아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분 나쁘다는 감정에만
머물러 있을 뿐
자신들의 행동이나 마음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잘못이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알아듣고 깨달아
스스로 하느님께 돌아올 기회를 주시기 위한
예수님의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비판하시고
꾸짖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을 뉘우치고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여러 기회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해 주십니다.
스스로 알아듣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입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알아듣고도 하느님께 돌아오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어려움을 가지고 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에서 벗어난 것이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끝까지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그 어느 한 순간에
그것을 깨달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럼에도 듣지 않으려고 우리의 귀를 닫거나
듣고도 실행하지 않아
하느님 나라를 빼앗기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