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지 물으십니다.
마치 율법 교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 반문하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그는 사랑의 계명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십니다.
율법 교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율법과 관련해서 누가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웃은
이스라엘 사람들만을 의미했습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을 죽이는 것이
살인죄에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볼 때
사마리아인은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결론은
사마리아인만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습니다.
즉 모든 사람이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민족이라는 조건 등
이웃이 되는 데 있어서
조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
지키기 어렵게 느껴집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내 이웃이고
그래서 그들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생각하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론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을
말씀하시지만
그 출발점은 지금 눈 앞에 사랑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옆에 있는 사람을
멀리 있는 사람보다
더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멀리 외국에 있는 사람이나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은
돈이나 물질을 주어서 표현하게 됩니다.
그에 비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쏟고 정성을 쏟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사람보다는
멀리 있는, 나와 상관 없는 사람을
더 신경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먼저 신경쓸 것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
사랑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그것이 쌓여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 이 순간 조건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
우리도 누가 내 이웃이냐는 조건을
달지 않을 것입니다.
순간 순간 사랑의 기회를 살아가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