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시다시피 요나는 자기가 주님의 예언자로
니네베에 파견되는 것이 싫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자기의 회개 선포로 니네베가 회개하는 것이 싫었고,
그래서 주님의 자비가 그들에게도 내리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비하시고 분노에 더디신 것은 좋은데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그러시는 것은 좋지만
내가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적대자에게도 그러시는 것은 싫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듭니다.
왜 이런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로 삼으셨는지?
이런 사람은 우리나 별로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도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만 누군 안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나는 용서받아도 내게 원수인 사람은 받지 않게 되기를 원하지요.
이런 우리이기에 주님께서는 오늘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우리가 원수를 용서하듯 우리를 용서해달라고 청하라고 하셨지요.
저는 주님의 기도 이 부분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질문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듯 우리 서로 용서케 해달라고 해야지
어찌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는지 말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듯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원수를 용서하지 않으면
그런 우리를 용서하시지 않겠다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용서치 않는데 당신이 먼저 용서하시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 것입니까?
내가 용서하기 싫은 원수를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면
그런 하느님이 좋고 그런 하느님을 내가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내가 먼저 용서할 기회를 하느님께서 가로채시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용서 없이도 하느님은 용서하실 수 있으십니다.
오늘 요나는 용서할 마음도 하느님 자비를 받게 할 마음도 없지만
하느님은 니네베인들을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시잖아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굳이 요나에게 니네베의 회개를 선포케 하십니다.
그것은 요나가 회개를 선포함으로써 자신도 회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요나와 다를 바 없는 우리도 회개의 선포자가 되라는 뜻이고,
회개의 선포자가 되기 위해 원수를 용서치 않으려는 내가 먼저 회개하라는,
그에게 하느님 자비가 내리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먼저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먹기 싫은 음식을 강요하듯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내가 행복하고 모두가 행복하기에 그렇게 하라는 행복 권고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를 선포하기 위해 먼저 회개하라는
그럼으로써 같이 회개하고 같이 행복하라고 주님의 초대를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