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루까 1,39-56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갑을 논쟁이 뜨겁다. 민초를 우습게 보고 함부로 “갑질”을 해대는 천박하고 야비한 정치꾼들, 그리고 대리점이나 하청업체, 또는 고객을 우습게 보는 기업들 때문에 야기된 논쟁이 바로 갑을 논쟁이고, 심지어는 “수퍼갑”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 만큼 우리 사회가 계급화되었다는 뜻인데, 그 계급화의 기준이 대개 권력과 재력, 돈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세상 모든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느님의 피조물,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참으로 아름다우시고, 참으로 위대하신 하느님 앞에서 우열을 가리는 것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진짜 “갑”이 누구인지 알려주시려고 당신 아들을 보내셨다. 하지만 그분의 “갑”다우심은 아무나 알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태여 “갑”이 되려 하지 않고 “을”로서 사는 데에 만족하고, 또 비록 “을”일지라도 하느님께서 언젠가는 올바로 안배하실 것임을 믿으며 인내하는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갑”다우심이다.
바로 그런 이들 가운데 뛰어나신 분이 성모님이시다. 사람들은 성모님의 아름다움을 외적으로 치장하려고 애를 쓴다. 화려한 꽃과 동산으로 성모님의 아름다움을 치하한다. 하지만 성모님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성모님의 낮은 자 되심,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모님의 아름다움이었다. 결국 성모님은 세상의 구원자의 어머니가 되셨다.
오늘은 그 어머니가 당신의 지극한 겸손과 순명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인 뒤 엘리사벳을 찾아가던 것를 기념하는 날이다. 엘리사벳은 기쁨에 겨워 오늘날 '성모송'의 모태가 되는 찬송을 바치게 되고, 성모님은 오늘날 '성모의 노래'라고 알려진 찬가를 부르신다. 세상의 낮음과 하느님의 높여주심에 대한 찬미가다. 진정한 “갑”은 바로 하느님이심을 노래하는 찬가이다.
하느님께서는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다. "갑"을 "을"로, "을"을 "갑"으로 바꾸셨다. 세상에서 함부로 “갑 노릇, 갑질, 육갑질, 꼴갑질”을 해대는 자들에게 외치자. 하느님만이 우리의 “갑”이시라고!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에게 대해서만 “을”임을 겸손되이 고백하고 “갑”이신 그분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세상의 모든 “을”인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Anawim)”끼리 연대하여 그분의 자비, 그분의 나라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