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토빗은 마음이 몹시 괴로워 탄식하며 울었다.
그리고 탄식 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목을 매는 것보다는, 평생 모욕하는 말을 듣지 않도록
죽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낫겠다.”
오늘 토빗서는 괴로운 두 남녀의 얘깁니다.
토빗은 구약에서 누구보다 선행을 많이 한 사람임에도
안 좋은 일이 연속으로 생기고 모욕을 당하기까지 하자 탄식하며 울고 있고,
사라는 일곱 번이나 시집을 갔지만 첫날밤을 보내기 전에 남편이 죽은데다
남편을 죽인 것은 바로 그녀라는 심한 모욕을 여종에게 듣고 죽으려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점은 괴로움에 처했을 때
그리고 모욕을 당했을 때 그들이 취한 태도입니다.
그들의 잘못이 없는데도, 아니 오히려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도
모욕을 당한 것이 억울하고 괴로운 것은 우리와 마찬가집니다.
그 괴로움이 어느 정도냐 하면 둘 다 울며 탄식을 할 정도이고
그런 모욕을 당하며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 다음에 취한 태도는 우리와 다릅니다.
그들이 취한 첫 번째 태도는 울며 탄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우리와 다른 것이고 잘한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그들의 억울함과 괴로움을
울음과 탄식으로 풀어냄으로 독을 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울음과 탄식은 해독제입니다.
울음과 탄식으로 억울함과 괴로움을 풀지 않은 채 오래 쌓아두면
억울함과 괴로움은 원망과 증오로 바뀌고 우리 안에 독이 쌓이게 되고,
독이 쌓인 사람은 뱀처럼 누군가를 물지 않으면 되는데
울음과 탄식으로 해독을 한 사람은 독기를 품지도 내뿜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토빗과 사라에게 배워야 할 점입니다.
화가 나면 화를 쌓아두지 않고 화풀이를 잘해야 하듯
원망과 미움도 독기로 바뀌기 전에 살풀이를 잘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에게서 더 배워야 할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원망과 미움을 혼자 삭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바꾸는 겁니다.
오늘 토빗과 사라는 각각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 토빗은 마음이 몹시 괴로워 탄식하며 울었다.
그리고 탄식 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목을 매는 것보다는 죽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낫겠다.”
토빗도 그렇고 사라도 그렇고 주님께 죽여 달라고 애원합니다.
원망이 애원의 기도로 바뀌고
한탄이 탄원의 기도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중얼거리거나 인간에게 화살을 돌리거나 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로 주님께 아뢰고 주님으로부터 답을 얻도록 합시다.
그리고 오늘이 토빗처럼 탄식 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하는 날이 되고
사라처럼 주님께 기도하는 게 낫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 날이 되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