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과 오늘의 마르코 복음의 얘기를 보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널리 퍼져있고,
예수님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사람들이 보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복음에서는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친척들이 찾아오고,
오늘은 예루살렘에서 율법 학자들이 와서 베엘제벨의 힘을 빌려
악령들을 쫓아낸다고 터무니없는 말을 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악령을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
그것이 하늘에서 온 힘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하느님을 칭송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베엘제벨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율법 학자들도 있는 것인데,
주님께서는 이들의 비뚤어진 시선을 성령에 대한 모독이라고 단죄하십니다.
이런 비뚤어진 시선 중에 선입견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똑바로 조사해보고, 식별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이미 안에 들어와 형성되어 있는 견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잘못 보고 안 좋게 보게 하는 내적 기제가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도 개와 같은 관점이 안에 있어서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욕심이 안에 있으면 욕심내는 것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보게 되고,
자기 안에 악이 가득하면 모든 것을 다 악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색안경을 끼면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도 비슷한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율법 학자들의 안에는 무엇이 들어가 있어서
성령에 의한 주님의 악령추방을 악령에 의한 것이라고 보게 하는 것일까요?
이들에게 악령이 들어가 있어서 성령을 악령이라고 보는 걸까요?
아닐 것입니다.
복음을 보면 악령이나 더러운 영들도 주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알아봅니다.
그러니 그들 안에 있는 것은 성령이든 악령이든 영적인 것이 아닐 겁니다.
그런 것이기보다는 교만과 악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만도 보통 사람의 교만 정도가 아니라
주님마저도 무시하고 악시할 정도의 교만일 겁니다.
제가 무시와 악시를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무시라는 말은 있어도 악시라는 말은 없지요.
제가 만들어낸 말로서 악으로 보는 눈이라는 뜻입니다.
교만의 는 어떤 것입니까?
교만은 분명히 있는 것인데도, 없는 것으로 본다는 뜻이지요.
우리말의 업신여김 곧 ‘없이 여기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렇다면 교만의 는 선한 것도, 악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모조리 악한 것으로 보는 눈이요,
하느님의 선한 업적도 악한 것으로 보는 눈이며,
한 달란트 받는 자가 주님을 모진 분으로 보는 것과 같은 눈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독한 교만은 무시를 넘어 죄악시하게 합니다.
특히 성령을 악령으로 모독하게 하는 죄악시인데,
이런 죄악시를 가진 자는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죄에 매이게 하는 무서운 교만을 경계하고,
이 죄악에서 구해주십사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