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도’
+ 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기도에 대해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빈말을 되풀이 하면서 기도하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이라도 계속해서 말해야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알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니까
빈말을 되풀이 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십니다.
주님께로부터 주님의 기도를 받은 우리들은 빈말을 되풀이 하면서 기도를 안 하는지 돌아봐야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주님의 기도를 받았지만 더 빈말로 기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하나의 빈말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하고 있는 저를 가끔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빈말을 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주신 주님의 기도까지 빈말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이 기도문을 누가 주님의 기도라고 이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 기도가 주님의 기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도는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이자 내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기도가 내 기도가 되지 않는 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를 다시 보면서 아버지라는 말과 저희라는 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이 기도에는 앞부분에는 아버지에 대한 말이 계속 있고,
뒷 부분에는 우리들에 대한 내용들이 계속 있습니다.
바로 이 기도문은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와의 관계에 대한 기도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기도는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 아버지와 대화하는 편안한 그런 대화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는 이 기도가 주님의 기도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기도임을 알았고 바로 자신의 기도로 만드셨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주님의 기도 묵상에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당신 이름이 빛나시는지
바로 사부님이 느끼고 생각하고 묵상한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이제 이 기도는 주님의 기도가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주님의 기도가 아니라 바로 나의 기도를 하느님께 바쳐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마음을 다해 바치며 내 기도로 만드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