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주님께서는 그 유명한 에파타 기적을 행하십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에파타’를 우리가 세례 때도 재현합니다.
세례로 이제부터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귀가 열리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입이 열리라는 뜻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의 행위가 다른 때와 같지 않습니다.
다른 때는 주님의 행위가 이렇게 은밀하지 않은데
오늘은 주님께서 귀와 입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 다른 때는 그저 말씀 한마디로 치유해주시는데
오늘은 여러 행위와 직접 손을 대시며 치유해주십니다.
어떻게 보면 과장된 제스츄어의 연출 같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하신 걸까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신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더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랑을 하신 것이고,
그에게 필요한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쉽게 열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봅니다.
꼭 이렇게 해야만 열리는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 사람.
귀와 입만 닫힌 사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마음의 문까지 굳게 닫힌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 귀와 입의 장애는 능력의 주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고치실 수 있고 그런 예는 성경에 수도 없이 많지 않습니까?
창세기에서는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백인대장은 한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거라는 믿음을 고백하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의 종을 찾아가지 않으시고 한 말씀으로 치유하셨잖습니까?
그러나 오랜 장애로 그의 마음은 정말 굳게 닫혀있었고,
그래서 이 마음의 장애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치유하셔야 했을 겁니다.
내가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너만 미워한 것이 아니다.
너만 미워해서 너의 귀와 입을 닫히게 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너만 고통을 많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지금 이렇게 너만 특별히 사랑할게.
이런 주님의 특별한 사랑과 말을 행위에 담아 그에게 말씀하셨을 것이고,
이런 특별한 사랑이 그의 마음에 닿아 귀와 눈과 함께 마음도 열렸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사랑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까?
이런 특별한 사랑이 아직도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아직도 필요하다면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완고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그렇다면 곧 사순 시기가 다가오는데
마음이 아직 사순 시기인 우리는 이런 말씀을 자주 듣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