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다고 전합니다.
유혹이라는 단어를 보면
남을 속여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이끌어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속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속이려고 작정하는 사람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유혹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채워주는 방식입니다.
자기의 말을 들으면
무엇을 주겠다는 식입니다.
그가 주겠다고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원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말을 물리치기 어렵습니다.
즉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건드립니다.
우리가 완벽한 존재라면
가지지 못한 부분이 없다면
유혹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더 원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에게는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누구는 그것을 욕심이라 표현하고
누구는 그것을 욕망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기에 앞서
원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의 또 다른 모습 가운데 하나는
'조금 더'입니다.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일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유혹하신다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만
그것을 주시면서
우리를 당신의 종으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전부를 다 주십니다.
당신 전부를 주시는 분이
동시에 우리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원하고
하느님을 희망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나라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하느님을 원하고
하느님께 우리의 눈을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