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어떤 표징일까요?
그것은 회개하지 않으면 니네베가 망할 것이라고
회개를 선포하자 사람들이 즉시 회개한 것이 바로 요나의 표징입니다.
이에 대해 오늘 요나서는 이렇게 간단히 묘사합니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에서 ‘그러자’가 특별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회개하라고 하자 즉시 회개하고 하느님을 믿습니다.
‘너 회개해!’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그러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우린 회개하고 니네베 사람들처럼 하느님을 믿습니까?
회개하라는 뜻에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즉시 그 지적을 받아들입니까?
다시 말해 지적을 받자마자 바로 회개합니까?
그러자 반박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변명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핑계를 대지 않습니까?
그러자 합리화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머뭇거리지 않습니까?
사실 니네베 사람들을 회개시킨 요나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요나는 주님께 명령을 듣고 도망친 사람입니다.
그는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여 주님의 용서를 받는 것이 싫은 사람이었습니다.
동족 이스라엘만 회개하고 주님의 용서를 받는 것을 원했지
원수 니네베가 회개하고 주님의 용서받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고래뱃속에서 삼 일 밤낮을 보내고 난 뒤에야
다시 말해서 죽었다가 살아난 뒤에야 마음이 바뀌었고
그렇게 자신이 회개한 다음에 회개를 선포한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회개하고 회개를 선포한 것이고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세대뿐 아니라 우리 세대에게도
필요하고 주어져야 할 하늘의 표징입니다.
사실 병이 낫는 것보다 마음이 바뀌는 것이 기적이고,
떼돈을 벌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돈을 벌게 된 것이 기적이 아니라
회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회개하게 된 것이 진정한 기적입니다.
세상 소망을 이룬 것이 기적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얻은 것이 기적이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소유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 것이 기적입니다.
아무튼 그러자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이 부러운 오늘 우리입니다.
그러자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 때문에 부끄러운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