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는 불가마 속에 곧 죽게 될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세 청년을 대표하여 아자르야가 바치는 절절한 기도입니다.
인간적으로만 보면 너무도 불행한 처지이기에
매우 두렵지만 그래서 막상 제가 이런 처지가 된다면
제가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런 처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선 아무것도 없는 상태 곧 가난한 처지에 처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즈카르야는 이렇게 이스라엘의 가난을 얘기합니다.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희생 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즈카르야는 물질적 가난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물질적으로도 가난했겠지만
우리의 박해 시대처럼 교회가 완전하게 파괴되어
성직자와 교계 제도도 없고 성전도 없어서
제물도 없고 제사도 드릴 수 없게 된 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난이 이스라엘을 겸손케 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관해 즈카르야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주소서.”
그렇습니다.
가난이 겸손케 하고,
겸손이 진정 하느님 앞에 서게 합니다.
그리고 겸손이 어제 수많은 예물과 군대를 거느리고 나타난
나아만과 달리 그런 것 없는 자신 그러나 마음만은 진실한 자신을 봉헌케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영적인 갈망이 최고조인 상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얼굴을 찾으렵니다.”
제가 부러운 것이 이것이고,
이 때문에 두렵지만 이런 상태가 되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너무 부자이고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과거에 비하면 물질적으로도 무척 아니 너무 부유하고
신앙 환경은 더더욱 부유해졌고 어찌 보면 넘쳐납니다.
사제도 많고,
성당도 많고,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피정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심은 굳건하지 않고 갈망은 없습니다.
이제는 뭔 배인지 모르기만 배가 불러서 미사가 있어도 가지 않고,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도 가지 않으며 골라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뭐가 많아도 마음이 없고 갈망이 없는 것이 문제인데
실은 너무 뭐가 많아서 마음도 없고 갈망도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싫고 그런 상황이 닥칠까 두렵지만
가난한 처지와 겸손한 마음을 주십사고 기도하는 오늘 저이고,
주님의 가르침대로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