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불편부당(不偏不黨)과 부화뇌동(附和雷同).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불편부당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공동체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부화뇌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도 공동체를 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불편부당하지 않으면 공동체가 깨지는 것을 보겠습니다.
불편부당이란 어느 편에서 서지 않고 어느 당파에 속하지 않는 거지요.
그런데 한 공동체에서 누가 한편에 서고
누가 다른 편에 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 보듯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주도적으로 그리고 나 중심으로
편 가르기와 줄 세우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편으로 만드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유력한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비단 다른 편과 내 편을 가르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진리의 편에 서고 주님 편에 서야 할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내 편 네 편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하느님 편만 있어야 하는데
내 편에 서게 함으로 그를 하느님 편에 서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부화뇌동하지 말아야 함을 보겠습니다.
남을 내 편으로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나도 어느 편에 서지 않는 것을 말함입니다.
부화뇌동이 주도적으로 편 가르기와 줄 세우기를 하는 것보다는
덜 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공동체를 깨는 것이기에 못지않게 악하고,
무엇보다도 줏대를 잃고 악한 일에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기에 딱한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뇌동(雷同)이 의미하는 바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뇌동이란 천둥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놀라 같이 움직이는 형용이고,
그래서 뇌동하지 말라고도 하지요.
이는 예기(禮記)에 聽必恭 毋勦說 毋雷同. 곧 남의 말을 공손히 듣되,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무조건 따라 하지 말라고 한 말과 맥을 같이하지요
그런가 하면 군자의 태도와 관련하여 논어에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곧 남과 화합을 하나 꼭 같지는 않다는.
그러니까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누가 하면
화이부동하고 부화뇌동하지 않아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군자를 넘어 성인 곧 진리 편에 서고 하느님 편에 설 사람들입니다.
확실하게 주님 편에 서야 하지 어정쩡하게 있다가 부화뇌동하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