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는 계명을 묻는 율법 학자에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첫째가는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도 이와 비슷한데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가는 계명을 우리는 자주
이웃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인간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에는
우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표현은 이웃 사랑에 초점을 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담고 있기에
인간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첫째가는 계명과 함께 보자면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랑은 누구만 사랑하고
누구는 사랑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기 어렵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다보면
세상 모든 것이 좋아보이고
그래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에게도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같은 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 둘은 실제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더 나아가서
인간 말고 다른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물론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데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합니다.
그 사람과 맺는 관계가 다르기에
사랑의 깊이가 다르다고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깊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미워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관계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까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우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한 사람을 정말 깊이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있다고 한다면
내가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랑에 집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관계를 통해
내 안의 사랑이 충만해질 때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 다른 피조물,
더 나아가 하느님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발점은 각자 다를 것입니다.
누구는 하느님
누구는 나 자신
누구는 옆 사람
누구는 내 주위의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깊이 느끼면서
더 넓게 확장되는 사랑도 함께 느낄 수 있는
나날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