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 주간 수요일(마테 11,25-27)
오늘 어떤 자매와 면담을 하였다. 동네에서 어떤 이권의 문제로 갈등이
생기게 되었는데 자기가 옳다고 보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한꺼번에 공격을 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었다. 그냥 옳게
보이는 사람을 도와주면 좋을 것 같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이권이 얽혀 있었고, 지나간 일로 여러 사람들이
이미 상처를 주고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금 객관적으로 시공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잘
도와줄 수 있을지 기도 안에서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 자매는 지금 그리고 꼭 자기가 도와주지 않으면 바로 어떻게
될 것 처럼 말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인간이 참으로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생각하였다.
우리 인간들은 어떤 일이 닥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그리고 자신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경솔함이었음이 쉽게 드러나고 오히려 일은 꼬이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내가 기도 안에서 시공의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할 때, 거기에 하느님의 지혜가 자리잡는다. 인간의 지혜가 오만함 안에 자리잡는다면, 하느님의 지혜는 우리의 겸손함
안에 자리잡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고 하면서 자기 뜻대로, 자기가 원하는 때에, 그리고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고 할 때 그것은 참된 지혜가 아니라 오만으로 변질되고, 더 이상 하느님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잠언 저자는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다." 라고 한다(9,10). 그분이 거룩하신 것은 우리와는 다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정녕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기에"(시편 90,4) 우리처럼 서두르시지 않고 모든 것을 살펴보시며 "모든 것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루도록"
섭리하시는 분이시다(로마 8,28).
이러한 그분의 거룩함, 성성(聖性)에 승복하는 것이 바로 슬기요, 지혜인
것이고, 그러한 슬기를 지닌 사람은 마치 철부지 아이들이 아빠나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것처럼 철저히 하느님 아버지의
거룩함의 권능을 신뢰하며 그분께서 몸소 이루시는 것을 물러나서 지켜볼 줄 아는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